13세기 중반부터 14세기 중반에 이르는 약 1세기 사이, 중국 본토를 중심으로 거의 동(東)아시아 전역을 지배한 몽골족의 왕국이다.
원은 티베트를 지배할 목적으로 타베트계 불교(라마)를 우대했다. 그 때문에 돈황 막고굴과 그 외의 미술에도 티베트 불교에 관한 것이 많이 만들어 졌다. 조형에는 비만,
Ⅰ. 중국불교미술의 흐름(후한에서 원대까지)
불교가 중국에 처음 전해진 확실한 연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후한의 영평(永平) 연간(57-75)에 수도 낙양(洛陽)에 불교가 전해졌다는 전설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이즈음에 불교가 중국에 전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후한서(後漢書)』
불교미술, 열화당 p119
탑파는 불교가 발생하기 전부터 고대인도에서 ‘무덤’의 뜻으로, 즉 사람이 죽고나면 화장(火葬)을 한 후 흙과 돌로 돔(Dome)과 원분(圓墳)을 만든 것을 가리켰다.
탑은 사리의 봉안 유무에 따라 탑파, 또는 지제(차이티야, Chitya)라고 하는별개의 용어가 있다. 먼저 사리 를
미술의 면모를 보여준다. 고구려의 불교건축은 대부분 궁궐건축과 비슷한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청암리의 금강사지에서 볼 수 있듯이 동서북쪽에 전당을 배치하고 남쪽에 중문을 세운 3금당식 가람배치가 주류를 이루었다. 중국 남조의 영향을 많이 받은 백제는 중문탑금당강당이 중심축 위에 배치되
불교미술을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불교미술이 종교미술(宗敎美術)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불교미술이 종교미술의 하나라고 생각함에 있어서의 종교미술이라고 하는 것은 흔히 서양의 기독교적 사고방식에서 나타나는 종교의 개념, 즉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발생
불교가 삼국의 대중적 신앙으로 발돋움한 7세기에는 중국의 유행과 관련이 없는 독자적인 불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불상이 있다면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다. 반가사유상은 중국에서는 거의 소멸해버린 서기 600년을 전후 해 삼국 모두에서 가장 중요한 불상의 형식으로
불교국의 으뜸가는 조형예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미술을 말한다. 동양미술의 근간을 이루는 것 가운데 하나로서, 불타(佛陀)가 말한 심오한 교설(敎說)을 따르는 교단의 형성과 그에 따른 신앙의 시각적 표현으로 활발하게 되었다. 불교의 발생지였던 인도를 비롯하여 중국과 한국 및 일본 등 대승불
불교미술과 건축을 위한 새로운 기술들도 전수되었다. 퍼트리샤 아이헨바움 카레츠키는 1988년 이래 바드칼리지 오스카 뮌스터베르크 아시아 미술학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1994년 이래 뉴욕 시립대학교 리먼 칼리지 미술사학과 겸임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91년부터 1998년까지 「중국 종교 저널(Journal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지만, 이를 소화하고 다듬어 새로운 조형적 규칙들을 창조해 나갔다는 것
청자에서 ‘선’과 ‘형’의 한국미를 읽어냄
조선회화에서는 중국회화와 대비되는 힘찬 양식상의 모험이 시도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림
주요저서 : 『불교미술』, 『동아시아의 불교미술』, 『에마
●불교미술 종류
1. 건축
불교미술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 건축이다. 가람(伽藍)의 배치에서 탑과 법당(法堂) 등 불전(佛殿)을 중심으로 사찰이 구성된다. 원래 사찰을 의미하는 절[寺]은 중국에서 외교사절을 맞이하는 관청을 뜻하였다. 이것은 불교가 처음으로 수용될 때의 사정을 짐